[홍사종의 상상칼럼] 숲을 보면 사람세상을 읽을 수 있다
미래상상연구소 (sjhong@sm.ac.kr)
세상만사는 돌고 돈다. 등산을 다니다 보면 나무의 세계도 주기적으로 돌고 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숲의 나무들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키로 구분하는 교목·관목 구별법과 잎의 모양새인 활엽수·침엽수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이외에 햇볕이 안 들면 잘 살지 못하는 나무 즉 양수(陽樹)와 손바닥만 한 햇빛만 있어도 잘 견디며 살아가는 음수(陰樹)로 나누는 구별법이 있다.
양수의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싸리나무 등이고 음수는 도토리나무라고 불리우는 신갈나무와 참나무류다.
양수는 경쟁자인 음수와 싸우면 필패하는 나무다. 그래서 양수인 소나무·아카시아나무는 경쟁자가 없는 양지바른 땅에 우선 자리 잡는다. 빛을 양분으로 바꾸는 탄소동화작용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양수가 숲의 주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둥산에서 가장 권력을 먼저 차지하는 아카시아나무는 임자 없는 묘지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식생을 자랑할 정도다.
소나무는 소위 잡목(?) 제거를 거들어 주는 사람들의 편파적인 애정공세 때문에 우선 정착률을 높인다. 이 양지짝 식생은 그 권력의 영원함을 뽐내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듯 하늘을 향해 교교한 자태를 뽐낸다.
그때 그늘 밑에서는 소리 없이 음수인 참나무류들이 나뭇가지 틈새로 겨우 들어오는 한줄기의 빛을 부여잡고 구차한 생명을 영위하기 바쁘다. 부족한 광합성 때문에 영양실조가 된 윤기 없는 이파리들을 겨우 매단 채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며 혹독한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음수들이 자라나는 것을 눈치챈 양수들은 더욱 가지를 왕성하게 해서 그늘을 만들며 음수의 생장을 방해한다.
함께 살아가자는 숲의 민주화운동 세력들을 향한 이 처절한 탄압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던 음수 몇그루가 어느날 안간힘으로 양수의 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참나무류 몇그루가 하늘로 삐져나오는 순간 양수들의 숲은 순식간에 동요를 일으킨다. 양지짝 인생이 음지짝 인생에 필패하는 인간세상의 이치처럼 숲 속의 권력은 순식간에 역전현상을 일으킨다.
인간의 간섭 없이 혼자서 숲의 권세를 지킬 수 없었던 소나무림은 각고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참나무류의 음수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이삿짐 보따리를 싸서 음수들이 없는 산등성이로 자리를 옮긴다. 음수의 그늘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자란 나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수는 역전된 그늘 속에서 하나둘 생을 마감한다.
서울시민이 자주 오르는 북한산 혹은 청계산 계곡에 그 옛날 무수하게 많았던 소나무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참나무림이 들어선 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산등성이 혹은 햇빛이 그나마 잘 드는 도로변 쪽으로 이사 간 소나무나 아카시아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되풀이되는 현상을 산림학계에서는 숲의 천이과정(遷移過程)이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숲은 반드시 이 같은 천이과정을 거친다. 천이가 오래 정체되면 산불이 나서라도 순환의 물꼬를 튼다. 물론 정상적인 인간세상도 자연적 천이가 일어나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양지짝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세력이 음수인 민주세력에게 자리를 내어 준 현상도 숲의 천이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양수와 음수의 순환처럼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천이도 왕성하게 일어나야 나라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움직이는 세상의 이치를 닮았다. 산불 날 일만은 막아야겠다.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sjhong@sm.ac.kr
[홍사종의 상상칼럼] 숲을 보면 사람세상을 읽을 수 있다
미래상상연구소 (sjhong@sm.ac.kr)
세상만사는 돌고 돈다. 등산을 다니다 보면 나무의 세계도 주기적으로 돌고 있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숲의 나무들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키로 구분하는 교목·관목 구별법과 잎의 모양새인 활엽수·침엽수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이외에 햇볕이 안 들면 잘 살지 못하는 나무 즉 양수(陽樹)와 손바닥만 한 햇빛만 있어도 잘 견디며 살아가는 음수(陰樹)로 나누는 구별법이 있다.
양수의 대표적인 나무는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싸리나무 등이고 음수는 도토리나무라고 불리우는 신갈나무와 참나무류다.
양수는 경쟁자인 음수와 싸우면 필패하는 나무다. 그래서 양수인 소나무·아카시아나무는 경쟁자가 없는 양지바른 땅에 우선 자리 잡는다. 빛을 양분으로 바꾸는 탄소동화작용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양수가 숲의 주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둥산에서 가장 권력을 먼저 차지하는 아카시아나무는 임자 없는 묘지까지 파고드는 강력한 식생을 자랑할 정도다.
소나무는 소위 잡목(?) 제거를 거들어 주는 사람들의 편파적인 애정공세 때문에 우선 정착률을 높인다. 이 양지짝 식생은 그 권력의 영원함을 뽐내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듯 하늘을 향해 교교한 자태를 뽐낸다.
그때 그늘 밑에서는 소리 없이 음수인 참나무류들이 나뭇가지 틈새로 겨우 들어오는 한줄기의 빛을 부여잡고 구차한 생명을 영위하기 바쁘다. 부족한 광합성 때문에 영양실조가 된 윤기 없는 이파리들을 겨우 매단 채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며 혹독한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음수들이 자라나는 것을 눈치챈 양수들은 더욱 가지를 왕성하게 해서 그늘을 만들며 음수의 생장을 방해한다.
함께 살아가자는 숲의 민주화운동 세력들을 향한 이 처절한 탄압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던 음수 몇그루가 어느날 안간힘으로 양수의 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참나무류 몇그루가 하늘로 삐져나오는 순간 양수들의 숲은 순식간에 동요를 일으킨다. 양지짝 인생이 음지짝 인생에 필패하는 인간세상의 이치처럼 숲 속의 권력은 순식간에 역전현상을 일으킨다.
인간의 간섭 없이 혼자서 숲의 권세를 지킬 수 없었던 소나무림은 각고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참나무류의 음수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이삿짐 보따리를 싸서 음수들이 없는 산등성이로 자리를 옮긴다. 음수의 그늘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자란 나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수는 역전된 그늘 속에서 하나둘 생을 마감한다.
서울시민이 자주 오르는 북한산 혹은 청계산 계곡에 그 옛날 무수하게 많았던 소나무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참나무림이 들어선 것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산등성이 혹은 햇빛이 그나마 잘 드는 도로변 쪽으로 이사 간 소나무나 아카시아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되풀이되는 현상을 산림학계에서는 숲의 천이과정(遷移過程)이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숲은 반드시 이 같은 천이과정을 거친다. 천이가 오래 정체되면 산불이 나서라도 순환의 물꼬를 튼다. 물론 정상적인 인간세상도 자연적 천이가 일어나야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양지짝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세력이 음수인 민주세력에게 자리를 내어 준 현상도 숲의 천이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양수와 음수의 순환처럼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천이도 왕성하게 일어나야 나라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숲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움직이는 세상의 이치를 닮았다. 산불 날 일만은 막아야겠다.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sjhong@s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