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종의 상상칼럼] 계단식 휴경논에 ‘물덤벙’을 만들자
농지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이 든 세대들은 논두렁길을 따라 움푹 파여져 있는 그 많던 물덤벙을 기억할 것이다. 60~70년대 물덤벙은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가뭄대비용 꼬마 저수지다. 꼬불꼬불한 논두렁길 이편저편에서 용두레, 혹은 무자위라고도 불리는 수차(水車)가 바쁘게 돌아가던 모내기철 그때의 아릿한 풍경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수차로 퍼낸 물덤벙 속에는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 민물고기가 풍성했다. 개구리, 두꺼비가 산란을 하고 우렁이, 물뱀, 물방개, 자라까지도 볼 수 있었던 생태 다양성의 보고가 고향의 물덤벙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개수로가 잘 정비되고, 사각형의 대단위 농지로 거듭난 현대식 논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도움으로 생산량을 급격하게 늘렸다. 그러나 반대로 가뭄 때 농사용 빗물을 가둬 놓기도 하고, 생태자원의 거점역할을 하던 물덤벙이 사라진 현대식 논은 어린 시절 우리가 늘 보고 자랐던 그리운 것들을 말살시켰다.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만만치 않았다.
두꺼비와 개구리의 산란장을 잃어버렸고, 이동통로마다의 생존 거점을 잃어버린 민물고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도 사라졌다. 어린 시절의 추억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물덤벙들이 해내던 홍수예방과 빗물 저장기능에도 손상을 입었다.
웬만한 논 한구석에 움푹 패어진 물덤벙은 오랜 물가두기를 통해 지하수의 생성과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물 관리’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2006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물 부족국가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하면 물 부족국가라기보다, 물 관리부족 국가라는 편이 맞는 말이다. 전체인구가 필요로 하는 물은 부족하지만, 실제로 연간 강수량은 평균 1,300㎜가 넘을 정도로 풍부하다. 대부분 여름철에 쏟아지는 빗물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바다로 흘려버리기 때문에 물이 부족한 것이다. 관개 답의 농수로는 배수로의 역할밖에 담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이 아까운 빗물을 충분히 잘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휴경하는 계단식 논에 습지를 조성해서 현대식 물덤벙을 만들면 어떨까. 기계화영농이 불가능한 계단식 논을 토지소유자로 하여금 습지로 조성하게 하는 방법인데, 물론 조성비용은 국가나 지자체가 댄다.
배수가 잘 안 되는 평야지의 저습 답이나, 진흙 논도 그 대상지로 삼는다면 효과가 커질 것이다. 휴경 답을 이용해 빗물습지 즉 대단위 물덤벙을 여기저기 조성하면 빗물가두기를 통한 가뭄·홍수 예방효과만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다.
습지가 조성되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연출될 뿐만 아니라, 다시 다양한 생물 종들이 복원됨으로써 생태계 보존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옛 물덤벙의 추억 또한 되살리는 효과도 만들어낼 것이다.
거기다가 연(蓮)·미나리 등 수생식물을 재배하면 농가의 소득창출에 크게 기여하게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의 중요한 자원인 ‘빗물’을 주제로 2012세계공룡엑스포를 개최하는 경남 고성군에서는 지금 이 중차대한 계획을 정책으로 수립하고 곧 실천을 앞두고 있다.
물 부족국가에서 국가가 그려야 할 그림을 대신 그려 주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sjhong@sm.ac.kr
[홍사종의 상상칼럼] 계단식 휴경논에 ‘물덤벙’을 만들자
수차로 퍼낸 물덤벙 속에는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 민물고기가 풍성했다. 개구리, 두꺼비가 산란을 하고 우렁이, 물뱀, 물방개, 자라까지도 볼 수 있었던 생태 다양성의 보고가 고향의 물덤벙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개수로가 잘 정비되고, 사각형의 대단위 농지로 거듭난 현대식 논은 화학비료와 농약의 도움으로 생산량을 급격하게 늘렸다. 그러나 반대로 가뭄 때 농사용 빗물을 가둬 놓기도 하고, 생태자원의 거점역할을 하던 물덤벙이 사라진 현대식 논은 어린 시절 우리가 늘 보고 자랐던 그리운 것들을 말살시켰다.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만만치 않았다.
두꺼비와 개구리의 산란장을 잃어버렸고, 이동통로마다의 생존 거점을 잃어버린 민물고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골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도 사라졌다. 어린 시절의 추억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물덤벙들이 해내던 홍수예방과 빗물 저장기능에도 손상을 입었다.
웬만한 논 한구석에 움푹 패어진 물덤벙은 오랜 물가두기를 통해 지하수의 생성과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물 관리’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2006년 유엔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물 부족국가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하면 물 부족국가라기보다, 물 관리부족 국가라는 편이 맞는 말이다. 전체인구가 필요로 하는 물은 부족하지만, 실제로 연간 강수량은 평균 1,300㎜가 넘을 정도로 풍부하다. 대부분 여름철에 쏟아지는 빗물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바다로 흘려버리기 때문에 물이 부족한 것이다. 관개 답의 농수로는 배수로의 역할밖에 담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이 아까운 빗물을 충분히 잘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휴경하는 계단식 논에 습지를 조성해서 현대식 물덤벙을 만들면 어떨까. 기계화영농이 불가능한 계단식 논을 토지소유자로 하여금 습지로 조성하게 하는 방법인데, 물론 조성비용은 국가나 지자체가 댄다.
배수가 잘 안 되는 평야지의 저습 답이나, 진흙 논도 그 대상지로 삼는다면 효과가 커질 것이다. 휴경 답을 이용해 빗물습지 즉 대단위 물덤벙을 여기저기 조성하면 빗물가두기를 통한 가뭄·홍수 예방효과만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다.
습지가 조성되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연출될 뿐만 아니라, 다시 다양한 생물 종들이 복원됨으로써 생태계 보존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옛 물덤벙의 추억 또한 되살리는 효과도 만들어낼 것이다.
거기다가 연(蓮)·미나리 등 수생식물을 재배하면 농가의 소득창출에 크게 기여하게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의 중요한 자원인 ‘빗물’을 주제로 2012세계공룡엑스포를 개최하는 경남 고성군에서는 지금 이 중차대한 계획을 정책으로 수립하고 곧 실천을 앞두고 있다.
물 부족국가에서 국가가 그려야 할 그림을 대신 그려 주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sjhong@s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