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인사


작은 사연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해 나가겠습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영종이길 120-8, 남양만의 바닷바람을 피해 삼태기처럼 생긴 야트막한 산 한가운데 몸을 숨긴 내 고향의 옛집 가대(家垈)인 옥란문화재단 옥란재(玉蘭齋)의 아름다운 터전은 아직도 그 옛날의 모습 거의 그대로입니다. 할아버지가 뒷동산의 조선솔로 대들보며 서까레와 기둥을 켜서 지으셨다는 집과 정원은 100여년의 가까운 풍상을 잘도 견디어 왔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견디어 왔다기보다는, 그 땅과 얽힌 저린 가족사의 한 편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나의 열망이 끊임없이 쓰러져가는 그 집을 보존하게 했다는 쪽이 더 옳을 것입니다.

 

저와 사란, 사선, 금란, 정란 5남매는 이 집에서 태어났지만 학교선생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갔고 다시 내려와 이곳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지금은 주변이 서울서 1시간 거리의 관광명소로 변했지만 옛날만 해도 옥란재는 바닷가 오지 중 하나였습니다. 전기불은 물론 들어오지 않았고 육로 수송 또한 발달되지 않아 집 앞의 작은 포구 왕모대를 통해 인천으로 송충이 먹은 소나무 목재를 운반하곤 했습니다. 학교까지는 5리 정도이고 가는 길은 풀이 듬성듬성 자라난 고샅길이었지요. 거기에 학교 가까이 고개 하나를 넘어야 되는데 넘기 힘들다 하여 이름하여 느릿재 고개였습니다. 

해운산(海雲山)은 남양반도의 맨 끄트머리에 언제나 새털구름 모자를 쓰고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그 산줄기 무성한 솔밭아래 내가 다닌 해운 초등학교가 백화를 만발하며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지금도 경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는 이 학교 교정에는 오래된 목백일홍나무 한 그루가 온통 붉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고향의 옛집에 얽힌 추억으로 가는 통로에는 늘 이 학교가 서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시절 아버지의 일시 낙향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맡겨놓은 땅」 이라며 한 평도 팔 수 없다는 나의 아버지 홍극유 선생. 그 아버지와 더불어 가족 모두가 경제적 궁핍을 당하던 시절이 그때였습니다. 장려쌀 얻어 첫 해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는 몇 년 동안 빚에 쪼들려 살았습니다. 밤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동네 사람들이 부잣집이라고 가르킨 우리집의 의미 모를 가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보리고개면 영락없이 보리밥 일색으로 변해가는 도시락은 부잣집 아들로서의 나의 자존심을 먹칠했습니다. 거기다가 늘 오르던 달걀부침까지 빠지는 날이면 나의 불만과 투정은 어머니에게 폭발되었습니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힘든 농사 뒷바라지를 끝마치고 매일같이 가마솥에 일꾼밥까지 해대던 어머니는 그때마다 우리집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해달라고 하셨지만 나의 몽니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습니다. 지금도 잘 보존하고 있는 옥란재 뒤란 장독대는 나의 어머니 玉蘭여사가 홀로 설움에 복받쳐 우시던 곳입니다.

 

6학년으로 올라간 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학교앞 선생님집에서 늦은 밤까지 과외공부를 했습니다. 밤늦도록 과외공부를 하고 돌아오던 길, 나는 장정들도 무서워 넘지 못한다는 느릿재 고개앞에서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감에 매일 떨었습니다. 그때마다 칠흑과 같은 밤 저편에는 언제나 희미한 등불 하나를 밝히며 다가오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아」 「엄마」 아버지가 育兒같은 하찮은 일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무책임하게 잠든 밤, 밤이슬에 바지고쟁이를 다적시며 홀홀단신 그 무서운 느릿재 고개를 넘어온 어머니를 통해 나는 버려진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따금 매몰찬 바람에 등불이 꺼지면 등피속으로 성냥불을 연신 집어넣던 어머니는 나의 두려움을 씻어주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고향의 옛집 대문 앞에 와서야 끝나곤 했는데 독서를 많이하신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 주제는 역사속의 위인들이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이야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박종화의 한국사 등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는데 여기에다 자신의 상상력까지 그럴싸하게 보태주시던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습니다. 곤궁하고 어려웠던 유년시절이었지만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고향의 옛집에서 보낸 몇 년을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바닷바람과 맑은 햇살 사이로 지저귀는 종달새 울음, 날 저물기 전에 동네 어귀를 부리나케 빠져나가는 어리장수의 엿가위소리, 뒷동산의 솔바람, 이려 이려하며 쟁기끄는 황소를 몰아가는 동네 일꾼들의 분주한 모습들, 명절 때마다 두레패가 꾸며내는 흥겨운 놀이판. 이 모든 것들이 내 저린 유년의 추억 속에 고스란이 살아 숨 쉬는 고향의 옛 집. 옥란재.
아무리 어려울 때도 아버지가 맡기신 땅을 한 평 팔지않고 그대로 간직한 뜻도 여기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옥란재단(玉蘭은 어머니의 아호이다)을 설립하게 된 배경도 이 땅을 영구 보존하고 싶은 바램에서 비롯됩니다. 전답은 공익재단에 기부할 수 없다고해서 가대와 건물만 기부했지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맡겨 놓으셨다가 지금은 아버지가 내게 맡겨놓으신 집과 넓고 아름다운 정원은 앞으로 설립취지에 맞게 사회공익사업에 고이 쓰여질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밀계(密契)처럼 돋아나 고단한 내 삶 속에 힘을 보태주던 작은 사연들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감히 약속드립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부터도 우리의 생명은 용솟음치나니.

                                                                                                                   



재단법인 옥란문화재단 이사장  홍 사 종  


 



About

재단법인 옥란문화재단은 설립자 홍사종이 그의 모친 옥란 이재복 여사와 부친 홍극유 선생의 뜻을 받들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영종이길 120-8번지 일대의 전통한옥과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가대(家垈)를 출연 다문화가정 지원사업과 농촌사회 경제 문화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옥란재단의 家垈는 소설가 박태순 선생이, ‘한국 전통의 원림문화를 오늘의 산업 사회에 어떻게 계승할 수 있는지 살필 수 있게 하는 참으로 희귀한 녹색의 장원’이라 극찬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Location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영종이길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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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301-0163-1289-41 옥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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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705-6206